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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아삭협동조합] 최종대 대표님 인터뷰 기사 -제주사회적경제매거진 JEJUWA

운영자
2022-09-16
조회수 140


[출처:제주사회적경제매거진 JEJUWA / 더 스토리 No.7 기업을 청년기업으로 변화시키다]

인터뷰 링크주소: https://webzine.jejuhub.org/user/company/detail?id=312


제주도 청과물 도·소매인과 중개인의 협업으로 탄생한 과일아삭협동조합!

먼저 ‘과일아삭’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청과물 도소매업과 이를 중매하는 중매인, 경매 보는 중매인을 위해 협업하는 협동조합입니다. 도·소매인과 중매인 모두 이제는 협업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업종이라고 판단해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대형 상권에 조금이나마 대응해 보기 위해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의 협업인가요?
무엇보다 원가 절감과 공동 판로 개척을 위한 협업 시스템인데, 매장마다 개별적으로 매입을 하면 단가가 높아지니까 협업을 통해 대량 매입을 함으로써 원가를 절감하는 거죠. 대량 매입을 한 상품은 각자 매장에서 판매도 하지만 공동매장을 설립함으로써 추가 수익을 창출해내고 조금씩 성장해나가면서 고용 인력도 늘려가는 중입니다. 과일 유통업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업종에도 진출했고요.
새로운 업종이라 하면 어떤 분야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과일 매장에서도 과일만 파는 게 아니라 제주 관광객을 위한 특산품도 같이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량 생산이 가능한 주스 공장도 설립했습니다.
유통업을 기반으로 이제까지 회사를 잘 키워오셨는데 직접 제조에까지 뛰어들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희 주요 거래처는 지역의 로컬마트나 하나로마트인데 그들도 요즘은 물류와 유통 비용을 아끼려고 과채를 산지에서 직접 매입해 오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이런 추세라면 향후 유통업이 경쟁력이 떨어지게 될 거라는 걸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미리 대비하기 하기 위해 제조업을 통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확장해나가면서 고객들한테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시장도 키우려고 합니다. 주스는 현재 시제품이 완성된 상태인데 시제품 테스트를 거쳐 다음 달부터 온라인상에서 먼저 유통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저희는 기존에 해온 업태를 유지하면서 다른 방향으로도 진출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도라 걱정도 되지만 저희가 유통 경험이나 유통망을 갖추고 시작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자신도 있고 해서 기대를 좀 하고 있습니다.

 
기존 주스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품들과 비교해 과일아삭 주스 브랜드의 차별점과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수입산 과채로 주스 가공을 하는 업체가 많은 데 비해 저희는 제주도 기업으로서 제주산 원물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가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최근 ABC 주스가 많이 판매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저희도 ABC 주스를 통해 사과가 나지 않는 제주의 과채음료 시장에 진입을 하게 된 것이고, 향후 저희가 취급하는 다양한 원물을 활용한 시리즈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비트, 당근 외에도 애플망고, 단호박, 브로콜리 등 제주산 재료를 다각화하려는 거죠. 현재 제주산 과채 주스가 다소 포화 상태이긴 하지만 꼭 주스만이 아니라 6차 산업 열풍을 타고 제주도 원물을 활용한 제품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입니다. 다만 저희는 마트 같은 기존 오프라인 유통 거래처를 보유하고 있고 자사 매장도 가지고 있으니 꼭 온라인으로 판매가 많이 안 이루어지더라도 지금 생산해내는 물량만큼은 충분히 판매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안정적인 판로를 만들어놓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경쟁력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이번에 갖춘 생산 설비는 다른 곳에서 4일 걸릴 생산 물량을 하루 만에 생산할 수 있는 설비라 제주도 내 OEM을 통한 수익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일아삭’이라는 회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서울에서 8년 정도 대형마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제 사업에 도전을 해보고 싶어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 가업 자체가 과일 유통업이었거든요. 부모님이 오랫동안 그 일에 종사하셨죠. 그런데 당시 부모님의 사업 상태가 이대로 가다간 좀 힘들겠다 싶어서 변화를 모색해보고자 했습니다. 주변에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들과 힘을 합해보면 어떨까 했던 거죠. 당장은 확실한 거래처들이 있고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10년 후, 15년 후에는 당연히 이건 없어질 업종 중 하나가 되지 않겠냐고 지금부터 미리 그 이후를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힘을 모아보자고 설득을 했던 거죠. 그렇게 해서 ‘과일아삭’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사업을 이어받은 거네요.
그렇죠. 부모님이 하시던 과일 유통업이 저희 ‘과일아삭’의 모태라고 볼 수 있어요. 부모님은 원래 제주도 분이 아니시고 부산 지역 분이세요. 아버지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열네 살부터 다른 집에서 머슴살이처럼 사셨다고 해요. 제주도 내려올 때도 돈 한 푼 없이 내려오셔서 어머니와 함께 노점상 등 온갖 일을 다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한림에서 분식점을 운영하게 되셨는데 가게 한쪽에 과일을 조금씩 팔기 시작했대요. 그런데 분식보다 과일이 더 잘 팔리는 걸 보고 아예 과일 가게로 방향을 바꾸신 거죠. 아버지가 영업을 다니시면서 육지에 가서 직접 과일을 떼다 팔기도 하셨고 공판장이 생기면서 과일 중매인 자격증을 갖추시고 나서 거래처가 점점 늘면서 사업의 기틀을 잡게 된 거죠. ‘과일아삭’은 한림 지역에서 부모님이 하시던 사업을 우리가 이어받아 시내권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지요. 저희 형제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 일을 많이 도와드리곤 했어요. 특히 아버지 곁에 계속 있었던 동생이 많이 도와드리면서 경험을 쌓았고요. 남동생도 현재 저희 협동조합에 같이 있는데 동생뿐 아니라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 같은 사람들이에요.


회사 설립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면요.
무엇보다 우선시했던 건 시장에서의 생존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매출이 발생하고 이윤을 내서 파트너들과 수익을 나누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사업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그게 되어야 고용 인력도 많이 창출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사람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함께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모두가 만족할 만한 조합원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각자 맡아야 할 역할을 고민하는 것, 그런 게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었죠.
협동조합은 조직 형태상 여러 단점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실제 운영 하는 입장에서 보시기엔 어떤가요?
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협업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 시너지가 나오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게 마련입니다. 다행히 저는 이미 관계가 형성된 상태에서 조합을 설립한 거라 그 과정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협동조합은 단점도 물론 있긴 하지만 초반을 잘 넘기면 오히려 장점이 더 많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끼리 친하다는 이유로 정관이나 회의록도 없이 되는 대로 운영하고 지출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되죠. 꼭 필요한 규칙을 정해놓고 불협화음이 안 나도록 잘 쌓아가는 게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 삼사 년은 지나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조직이 되는 것 같아요.
그 시기를 성공적으로 잘 건너오신 것 같은데 그래도 그 과정에서 힘 들었던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협동조합 차원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역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이 제일 힘들었어요. 기존에 해오던 사업을 그대로 유지 관리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동시에 진행해 나가야 하니 부담감이 좀 있었죠. 그래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게 될 때는 컨설팅이나 멘토링을 받아보기도 했는데 솔직히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사업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비용을 투자했는데 결과물을 못 만들어내면 어떻게 하나,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되는데 이런 문제들은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숙제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7년 정도 ‘과일아삭’을 운영을 해오셨는데 실패의 경험도 있으신가요?
당연히 있죠. 휴게음식점을 운영하던 초반이었는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과일 빙수와 주스가 반응이 엄청 좋은 거예요. 당시 빙수 전문점이 막 생기던 시기였는데 ‘과일아삭 빙수’가 진짜 유명했어요. 그때는 정말 의자에 한 번 앉을 시간도 없이 빙수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렇게 사업이 잘 되다보니 욕심이 생겼죠. 사업을 확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해서 가게를 맡기고 저는 이제 삼화지구와 외도동에 새 매장을 오픈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한 군데가 잘 되니까 서너 군데 오픈을 하면 더 잘될 줄 알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무리하게 점포를 확장해 나갈 게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가게에 바리스타나 파티쉐 같은 분들을 영입해서 더 전문적인 카페 형태로 발전을 시켰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우리 내부에는 휴게음식업에 대한 변화와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처음에 반응이 엄청 좋았을 때 그 인기 메뉴 하나만 가지고 홍보만 잘했어도 됐을 텐데 그때는 홍보에 대한 중요성도 그렇게 크게 깨닫고 있지 못할 때였고 그냥 맛집으로 소문나면 다 오는 거지 하는 안일한 생각만 갖고 있었어요. 한편으론 우리가 그렇게 돈을 막 쏟아부으면서 직영점을 늘려갈 것 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전환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당시 제주 청년들이 제주 안에서 취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거든요.
육지에 있는 기업들에 비하면 제주도 기업은 5%도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공무원이 최고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제 주변만 봐도 열 명 중 일곱 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것 같아요.
일명 공시생들인 이들은 대부분 취업고시촌이라 불리는 서울의 ‘노량진’으로 가곤 했죠.”

 



그래도 그 실패의 경험이 ‘과일아삭’의 다음 스텝에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렇죠. 실패를 경험하고 나면 다들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거 배웠다고 얘기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걸로 위안을 삼기에는 너무 큰 손실과 타격을 받아서 그때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만 힘든 게 아니고 조합원들도 다 힘들었으니까요. 그때 작은 성공에 들떠서 마구 사업을 벌였다가 결국은 현실을 깨닫고 다시 원래 업종으로 돌아온 겁니다. 이제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을 한다 해도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내부의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휴게음식점으로 운영하던 매장은 완전히 다 접은 건가요?
네, 다 접었어요. 사실 휴게음식점들은 다 실패를 했지만 기존의 공동 사업장과 선물 매장은 잘 되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죠.
서울에서 대형마트에 다니셨다고 했는데 그때의 경험도 ‘과일아삭’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만 7년 정도 근무했는데 매입 매출 관리, 선입 선출 관리, 재고 관리. 유통 관리 등 기본적인 것들을 그곳에서 많이 배웠어요. 그때 받았던 리더십 교육이라든가 관리체계 교육의 경험이 지금 협동조합을 해나가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적은 인력으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갈지에 대한 노하우도 거기서 쌓았다고 봐야죠. 제가 만약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자영업만 해온 상태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했다면 체계적으로 운영하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취직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시게 된 건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당시 젊은 패기에 제주도를 좀 벗어나서 사회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제주 청년들이 제주 안에서 취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거든요. 육지에 있는 기업들에 비하면 제주도 기업은 5%도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공무원이 최고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제 주변만 봐도 열 명 중 일곱 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것 같아요. 일명 공시생들인 이들은 대부분 취업고시촌이라 불리는 서울의 ‘노량진’으로 가곤 했죠. 저 역시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경찰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행정학과에 지원했는데 막상 대학생활을 하면서 제 인생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뭐 그랬습니다. 대학에서 단과 회장직을 맡으면서 학생회 활동을 활발하게 했고 그러다 4학년 때 총대의원회의 대의원회장직을 또 맡게 되니 학업은 뒤로 미루어지고 결국 학점이 모자라서 졸업도 다른 친구들보다 늦어졌거든요. 이미 1학년 때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온 동기들에 비해 저는 4년, 5년이나 늦게 시작해서 언제 시험 봐서 취직을 하나 싶었죠. 그래서 진로를 바꾸고 바로 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대형 유통회사에 입사를 하게 된 거였죠.
경찰공무원의 꿈을 접게 된 것이 아쉽지는 않으셨어요?
청소년기에 진로를 고민하면서 내가 만약 직업을 갖게 된다면 무의미하게 그냥 돈만 버는 일은 좀 재미가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경찰공무원 같은 공직에 있으면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 막연히 그 직업을 동경했는데 현실적으로 준비가 미흡했죠. 사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계속 맞벌이를 하시다 보니 고등학교 때 진로에 대해 제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그만큼 공부를 했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어요. 철이 늦게 든 거죠. 대학교에서도 미래를 설계하기보단 그냥 당장 눈앞에서 하고 싶은 일을 더 우선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뭔가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건 굉장히 철 든 생각인데요.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아래에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셨을지도 궁금하네요.
부모님은 정말 고생하면서 힘들게 우리를 키우셨는데 맞벌이를 하시다 보니 집에는 늘 저희 사남매끼리만 있는 경우가 많았죠. 저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완전 왜소하고 키도 작아서 항상 맨 앞자리에 앉는 존재감이 별로 없는 그런 아이였어요. 남학생들은 보통 누가 너무 약해 보이면 막 괴롭히거든요. 근데 그런 애들보다 더 약해 보이니까 아예 괴롭히지조차 않고 건드리지 않는 그런 존재였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저의 모습이 진짜 180도 달라지거든요. 일단 키가 엄청나게 자랐어요.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계속 운동도 시키고 엄청 많이 먹이고 하면서 육체적으로 성장을 하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학교 선도부장을 할 정도로 성격도 적극적으로 바뀌더라고요. 정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쌓였던 그 자신감이나 리더십 이런 것들이 대학교에선 자신감 넘치는 활동으로 이어졌고 사회에 나와서도 지금의 모습까지 이어진 거죠. 당시 고등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이 저한테는 지금도 가장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감 있게 활동하던 대학 시절을 마치고 서울로 갔는데 그곳에서 마주친 현실은 제주에서와는 굉장히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많이 달랐죠. 처음엔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처음부터 유통업에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취업이 목표였던 터라 여기저기 지원해서 일단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직장의 근무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하더군요. 승진을 두고 경쟁하는 시스템인 데다 유통업 특성상 야근도 당연시되는 분위기였지요. 사무 업무는 그냥 하루 일과가 끝나면 끝낼 수는 있는데 매장 근무는 끝이라는 게 없어요. 일이 계속 생기죠. 고객들의 컴플레인도 걸리고 공무원들도 찾아오고 매출 분석도 해야 되고…… 정말 끝이 없거든요. 그러면서 충원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인력은 더 줄어들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반대로 임원들 숫자는 엄청 늘어나서 자기네끼리 보너스 잔치를 하고 있으니 다들 불만이 쌓여갔죠. 당시 유통업에서 연장 근로 수당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는데 제가 관리자를 설득했어요. ‘직원들 새벽까지 일 시키는데 보수도 안 주고 시키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 나는 늦게까지 할 테니 매장 다른 직원들에게는 연장근무 수당을 지급해달라.’ 이렇게 지속적으로 강력히 문제를 제기해서 결국 저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제가 당시에도 좀 튀는 행동을 많이 했죠. 한번은 회사 임원들이 와서 서로 소통을 위한 간담회를 한다고 해서 제가 근로자 대표로 갔는데 질문이 적혀 있는 대본을 주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났죠.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을 다 하겠다고 했고 정말 그렇게 했어요. 거기서.
당시 노조가 없었나요?
정규직은 없었고 비정규직 노조가 먼저 생긴 상태였는데 회사와 대립이 심했죠. 당시 정규직은 노조를 결성하고 싶어도 함께할 동료가 없었어요. 당시에는 노조를 만들면 사내에서 공적이 되던 때라 다들 자기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겁냈던 거죠. 그러니 노조를 결성하게 되면 저 혼자 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그러니 3명만 있으면 노조 설립이 가능한데도 그걸 못했어요. 당시 저는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면서 나름 일도 잘했고 승진도 빠른 편이었는데 문득 내가 이 열정을 가지고 차라리 내 사업을 하면 어 떨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사 내에서 그래도 임원까지는 가봐 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는데 결국 그 임원이라는 것도 공허하게 느껴지고. 어쩐지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못해 보고 그냥 인생을 끌어온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자 결심을 하게 됐죠.


다시 내려오셔서 결국은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고 계신데 마지막 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좀 들려주세요.
저희는 사회적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아니라 일반 협동조합이다 보니 설립 목적 자체도 이윤 추구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사회적 미션은 무엇일까 고민하는데 결국 지역사회와 동반 성장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 아닐까 합니다. ‘과일아삭’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소득이 증대되고, 회사가 성장해 지역 청년들을 많이 채용하고 나아가 시니어 청년들의 일자리도 창출한다면 그 역시 사회적 미션에 한걸음 다가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직접 농사를 할 생각도 있는데 수출 가능한 품종을 개발해 농가들이 소득을 올리게 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1차산업의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이와 관련된 새로운 사업들도 계속 개발해 나갈 예정이고 농산물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재활용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싶습니다. ‘과일아삭’은 지역과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운 사업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

 

 


 과일아식협동조합 은 제주과일 전문 중매인이 협업하는 협동조합으로 GAP(농산물 우수관리 인증 제도) 인증업체입니다. 품질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출처:제주사회적경제매거진 JEJUWA]

인터뷰 링크주소: https://webzine.jejuhub.org/user/company/detail?id=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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